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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경기도국악당 흥겨운극장에서 ‘30년대 조선가희(朝鮮歌姬)’를 만나다!

30년대 조선가희(朝鮮歌姬) 이난영, 박향림, 왕수복, 선우일선, 이화자의 삶과 음악 무대 위로 소환
"트로트에서 아리랑까지" 진행자 윤중강 사진.
최근 들어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잇달아 발표되며 1930년대가 하나의 문화예술 트렌드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경기도문화의전당 국악당(사장 정재훈․이하 경기도국악당)은 28일 오후 5시 경기도국악당 흥겨운극장에서 30년대를 주름잡았던 5인의 매혹적인 여가수들을 조명하는 공연 「윤중강과 함께하는 트로트에서 아리랑까지」 (이하 트로트에서 아리랑까지)를 선보인다.


이날 공연은 국악평론가 윤중강의 진행으로 30년대의 영상과 복각음반, 라이브 재현무대를 선보이며 그 시절의 삶과 음악을 훑어 내린다.


공중파 라디오프로그램 <흥겨운 마당>의 진행자이자 ‘국악평론가 1호’ 윤중강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1930년대 음악과 역사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줄 예정이다.


진행자 윤중강은 “단군 이래 지금까지 1930년대 사람들 만큼 도제나 집단에 영향을 받지 않은 이들이 없었으며, 그들은 사고(思考)도 자유로웠다”며 “시대-노래-사람이 어우러진 공연이 될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이날 공연은 하지아(노래), 김민지(노래), 미미(아코디언), 노경진(기타)이 조선가희(朝鮮歌姬) 5인의 음악을 재현하여 관객들을 30년대로 인도한다.
"트로트에서 아리랑까지" 진행자 윤중강 사진.
■ 조선가희(朝鮮歌姬) 5인 소개
▣목포의 눈물, 이난영


(1916~1946)


당대 최고의 음반사 “오케 레코드”의 전속 가수 이난영(1916~1946)은 ‘목포의 눈물’로 가왕(歌王)이라 불릴 정도의 높은 인기를 누렸다. 목포공립보통학교를 다니다가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인해 중도에 자퇴했다.


제주도에서 어머니와 생활하던 중 주인집 아이를 돌보며 흥얼거린 노래를 듣고, 극단을 경영하던 집주인의 추천을 받아 순회공연 중이던 삼천가극단의 막간 가수로 서게 된다.


이난영을 알아본 작사가의 추천으로 오케 레코드 전속 가수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1935년 문일석의 가사에 손목인이 곡을 붙인 ‘목포의 눈물’로 가왕(歌王)이라 불릴 정도의 높은 인기를 얻게 된다.


1936년에는 오카 란코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음반을 발표하고, 대중가요 작곡가 겸 가수로 활동하던 김해송과 혼인하였다.
"트로트에서 아리랑까지" 진행자 윤중강 사진.
■ 28일, 경기도국악당 흥겨운극장에서 ‘30년대 조선가희(朝鮮歌姬)’를 만나다
▣ 독특한 목소리 탁월한 기교, 박향림(1921~1946)


독특한 목소리와 탁월한 기교를 가졌던 박향림은 동시대 여가수들 중 가장 도시적이고 발랄한 분위기의 노래를 불렀다고 평가받는다.


‘오빠는 풍각쟁이’, ‘전화 일기’ 등의 명곡을 남겼으나 산후병으로 24세의 나이에 요절한다.


소설가 이효석의 연인으로도 유명한 왕수복(1917~2003)은 최초 기생 출신 대중가요 가수로 데뷔하여 1935년 잡지 「삼천리가」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이난영, 선우일선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인기스타였다.
"트로트에서 아리랑까지" 진행자 윤중강 사진.
■ 28일, 경기도국악당 흥겨운극장에서 ‘30년대 조선가희(朝鮮歌姬)’를 만나다
▣ 소설가 이효석의 연인, 왕수복(1917~2003)


소설가 이효석의 연인으로도 유명한 왕수복은 최초 기생 출신 대중가요 가수로 데뷔하여 1935년 잡지「 삼천리 」가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이난영, 선우일선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인기스타였다.


그녀는 정상의 자리에서 만족하지 않고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서양음악을 공부하여 메조소프라노가수로 귀환한다.


이후 조선 민요를 성악 창법으로 불러 화제를 모은다.


소설가 이효석과 경제학자 김광진의 연인으로도 유명한 왕수복은 이효석의 임종을 지키고, 훗날 시인 노천명의 연인이었던 김광진과 결혼하여 함께 월북한다.
"트로트에서 아리랑까지" 진행자 윤중강 사진.
■ 28일, 경기도국악당 흥겨운극장에서 ‘30년대 조선가희(朝鮮歌姬)’를 만나다
▣ 하늘나라의 옥퉁소 소리, 선우일선(1918~1990)


1933년 포리돌레코드 문예부장 왕평에게 발탁되며 ‘꽃을 잡고’라는 곡으로 데뷔한다.


주로 신민요를 불렀던 가수 선우일선(1918~1990)은 왕수복과 함께 평양기생학교 출신 가수로 쌍벽을 이루는 인기를 얻었다.


신민요의 고전으로 불리는 ‘조선팔경가’를 비롯하여 ‘압록강 뱃노래’, ‘바람이 났네’와 같은 히트곡을 발표한다.


작사가 및 영화감독으로 활동했던 이부풍은 선우일선의 소리를 “하늘나라에서 옥퉁소 소리를 듣는 듯한 아름답고 청아한 목소리”라고 회고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 평양에 머물며 말년까지 민요 연구에 헌신한 것으로 알려진다.
"트로트에서 아리랑까지" 진행자 윤중강 사진.
■ 28일, 경기도국악당 흥겨운극장에서 ‘30년대 조선가희(朝鮮歌姬)’를 만나다
▣ 십만 장 판매의 폭발적 인기, 이화자(1918~1950)


작곡가 김용환에게 발탁되어 가수로 데뷔한다.


당시 인기 절정이던 왕수복, 선우일선을 능가하는 민요가수로 주목을 끌었다.


1938년 오케레코드사에서 거액을 받고 전속가수가 되어 김해송 작곡인 ‘화류춘몽’, 박시춘 작곡의 ‘목단강 편지’ 등으로 큰 인기를 얻는다.


특히 ‘어머님 전상서’는 십만 장 판매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내며 이화자를 민요의 여왕 자리에 앉힌다.


광복 이후 지방순회공연단체의 일원으로 객지생활을 하다가 일가친척 없이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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