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종동 [베이징], 상동역 [굿모닝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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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차이나 김영찬 대표와 직원들 |
짜장면은 달다. 짜기도 하다. 달콤짭쪼름한 짜장면과 얼큰한 짬뽕. 바삭한 탕수육. 언제 먹어도 맛있고 질리지 않는 절대불변의 국민 인기 메뉴다.
부천에는 달콤짭쪼름하게 사랑을 요리하는 중국집이 많다. , , , . 그들은 중국음식을 요리한다는 것 외에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나눔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 그들이 이웃에게 전하는 사랑의 요리, 그 맛있는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맛있는 선물’을 요리하다
부천시 원종1동, 오정초등학교 앞으로 뻗은 길가에 중화요리가 있다. 이곳에서는 한 달에 한번 특별한 짜장면을 요리한다. 김성화, 김진훈 부부가 요리하고 배달한다. 음식이 가는 곳은 어르신 생일파티.
매달 첫째 주에 15그릇 정도를 배달한다.
2014년 부천시 원종1동 주민센터에서 제안이 왔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전부터 주변 어르신과 나누고 있었다. 가게를 넓히고 주변 어르신들을 돌보기 시작. 2010년부터 6년 됐다. 주변 노인정으로 음식을 보냈다. 모일 곳이 없는 할아버지들은 가게로 초대하기도 했다.
김성화 사장은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제일 쉽게 할 수 있고, 제일 잘 할 수 있기에 음식을 나눈다”며 짜장면을 나누는 이유를 밝혔다.
가진 사람들이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내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룬 것이 다 내 것은 아니에요. 서로 돕고 같이 살아야죠. 그게 사는 재미죠” 김성화 사장은 나누는 것이 아깝지 않다. 1997년 가게를 처음 열고 나눔을 시작하기 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그 나눔이 더 아름답다.4평에서 시작한 가게
김성화, 김진훈 부부는 같은 직장에서 처음 만났다. 결혼 직후 회사가 부도나면서 실업자가 됐다.
첫째를 임신한 부부는 생계가 막막해졌다. 당시에 아주버님이 원종동에서 중국집을 했다. 그래서 무작정 부천에 왔다. 97년 11월이었다. 그녀의 나이가 고작 29살 때였다. 시댁에서 논을 팔아 2천500만 원을 빌려줬다.
부부는 부천시 원종동에 중국집 을 열었다. 4~5평짜리 작은 가게. 가게에 딸린 쪽방에서 살았다. 위에는 계단이라 천정이 기울어지고, 아래는 정화조였다. 두 명 누우면 꽉 차는 그런 방이었다.
처음에는 가게 운영이 어려워 주방장도 고용할 수 없었다. 김성화 사장이 요리를 시작했다.
김진훈 사장은 배달을 했다. 6개월 걸렸다. 맛있다는 말을 듣기까지.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지만 요리에 소질이 있었나보다. 어릴 때 시골에 살았던 김성화 사장.
초등학생이었던 그녀는 어른들이 일하러 가면 새참을 챙겨나갔다. 상추로 예쁘게 장식도 하고, 밀가루와 막걸리로 꽈배기도 만들며 솜씨를 발휘했었다. 지금은 주방장들 사이에서 잔꾀가 통하지 않는 ‘무서운 사모님’으로 통한다고 한다.고생을 끝내고 새로운 도전
이자를 포함해서 빚을 다 갚는데 3년이 걸렸다.
1년 더 열심히 하고 전세를 얻었다. 임신하고 하루도 쉬지 못했다.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는 몸조리도 못하고 바로 불앞에서 요리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배가 많이 나왔는데 불 앞에서 요리를 하니까 앞치마가 불에 타고 그랬어요. 둘째 아토피가 그것 때문일까 미안한 마음뿐이에요”라며 지난 시절을 떠올리는 그녀. 아이들은 낳자마자 각각 시댁과 친정에 맡겼다. 낳기만 하고 키우지 못했다는 그녀의 말에 지난 고생이 느껴진다.
둘이서 하던 일을 이제 주방 2명, 배달 1명, 홀서빙 1명이 한다. 주말에는 아르바이트까지 쓴다.
4평이던 가게는 40평이 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고3, 중2가 되었다. 그녀는 내년이면 대학생이 되는 아들에게 ‘특별 과외’를 받기로 했다.
대학에 가서 ‘사회복지’나 ‘식품영양’을 전공하는 것이 그녀의 목표. “앞으로 먹을거리가 중요하잖아요. 제대로 된 먹을거리를 만들고 싶어요” 중화요리 과목이 있다면 1등할 자신 있다는 그녀의 새로운 도전과 아낌없는 나눔에 응원을 보낸다., 나눔을 만들어가다
지하철 7호선 상동역 인근, 아파트와 상가들이 잔뜩 들어선 번화가이다. 세이브존 뒤편에 있는 여러 상가들 중 한 곳에 ‘굿모닝차이나’가 있다.
김영찬 사장은 직원들과 나눔을 만들어 간다. 직원들과 함께 결정한다. 직원들도 나눔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 일과처럼 ‘당연하게’ 생각한다.
는 참 많이 나눈다. 그리고 꾸준하다. 부천시 상동 자동차백화점에 장애인재활작업장이 있다. 장애인들이 주체적으로 일하는 곳이다. 이곳에 매달 한번 식사를 배달한다. 20인분 안팎. 인연을 맺은 지 10년 가까이 된다.
가게 주변 두 복지관을 도운지도 8년 이상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중3동에 있는 덕유사회복지관은 생일을 맞은 어르신 10여 명과 식당에 찾아온다. 가게에서 생일 선물로 식사를 제공한다. 중4동에 한라종합사회복지관에도 생일 식사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여름방학이면 체험학습 비용을 일부 지원한다.
그밖에도 무료급식, 경로잔치 등 여러 가지를 돕는다.
그들은 최근 다른 사업자나 단체와 할 수 있는 것도 기획하고 있다. 경찰서와 함께 덕유사회복지관에 ‘짜장면 봉사’를 한다. 두 달에 한번 180인 분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날 점장과 실장은 새벽부터 출근해 재료를 준비한다.
나누는 곳이 더 있는데, 그들은 말을 아낀다. 그동안 장삿속으로 보일까봐 남모르게 했었다고 한다. 가게에서 하는 나눔을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는 것도, 언제부터 얼마나 했었는지 돌이켜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김영찬 사장은 “어느 날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며 기억을 더듬는다. 당시 상3동 통장이 “어려운 이웃이 있는데 도와주자”고 그에게 제안했다. 그의 나눔은 그렇게 시작되었다.‘장사’와 ‘봉사’는 별개
김영찬 사장은 2002년에 강원도 시골에서 부천으로 상경했다. 점장으로 에 처음 온 것이 벌써 14년 전. 매형의 가게였다. 2년 쯤 지나 가게를 인수받고 사장으로 12년째다.
그는 부천이 참 좋다. “시골에 비해 모든 게 나아졌고 주변에서 좋은 이웃들을 만났다. 그래서 난 부천이 좋다”는 그는 일을 사랑하고, 주변 이웃들에게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가게가 적자 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렵지 않았다. 즐겼다.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가게 운영이 어려울 때도 ‘장사’와 ‘봉사’는 별개라고 생각했기에 쭉 이어왔다. 그의 그런 마음이 굿모닝차이나를 ‘나눔가게’로 만들었다.
2015년 상3동 주민자치위원장을 맡고 있던 그는 2016년부터 상3동복지협의체 위원장을 맡았다. “주민자치위원장으로서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복지협의체는 이웃을 돕는 일이기에 하고 싶었고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원했다”며 이웃돕기에 열의를 보였다. 그는 전부터 나눔을 해왔지만 복지협의체 위원장을 맡고나서 조금 달라졌다. 전에는 근처에 보이는 어려운 이, 소개로 알게 된 이웃, 찾아오는 사람을 도왔다.
하지만 이제는 직접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는 김영찬 사장. 그는 ‘동’이라는 권역이 허물어지길 바란다. “다른 어려운 동도 같은 부천 이웃이니 돕고 싶다”는 그는 참 착한 부천시민이다.직원들과 함께 하는 나눔
가게 관리를 맡고 있는 양재정 점장은 6년 정도 근무했다. 에서 하는 나눔은 거의 양 점장이 관리한다. 양 점장은 ‘나눔가게’에서 일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나눔을 실천하고 있었다.
바로 고3 때 학교에서 하게 된 헌혈이 그 시작. 헌혈(전혈)을 56회 이상했다. 군대와 해외연수 시절을 제외하면 34살인 현재까지 1년에 다섯 번씩은 한 셈. 그는 대한적십자 등록헌혈회원이다. 기념패와 메달도 받았다.
비록 첫 헌혈은 ‘초코파이와 게토레이’ 때문이었지만, 헌혈 사랑을 15년간 이어온 그 꾸준함은 ‘기념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천에서 자랐다. 중3동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5남 1녀 중 하나였던 그는 복지사각지대에 놓였던 적이 있다. 그때 학교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학비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그는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고 막막할지 이해한다. 그렇기에 더 기꺼이 나눔에 앞장선다.
한재희 실장은 주방을 맡고 있다.
그 역시 에서 근무한지 6년. 그는 처음 봉사를 하던 날에 대해 이야기 했다. 처음 그는 김영찬 사장 손에 이끌려 따라 갔다.
“과연 사람들이 좋아할까.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봉사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고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뻤다는 한 실장. 지금도 그렇다.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힘들지는 않다고 한다. ‘180인분을 준비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새벽 6시에 주방에 나와 준비한다.
직원들은 20여 명. 그들은 가족이다.
가족처럼 지내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같이 보낸 시간이 그렇다. 8년 이상 일한 사람도 있다. 평균 근속이 5년이다.
업계 평균 근속기간이 짧고, 이직이 많은 점을 생각해보면 이곳은 참 오래 일한다. 쌓여가는 시간 속에서 직원들은 가족이 되고, 서로 끈끈해진다. 그런 관계가 더 끈끈한 나눔을 만들어간다. 좋다. 아무리 봐도 부천의 중화요리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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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2016-10-06 22:3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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